카카오톡 공유 보내기






'장강후랑추전랑' 長江後浪推前浪

(장강은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듯 나아간다)" 이라 하지 않는가. 내 후대는 앞으로 나보다 더 나아질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내 간절한 희망이다.
지난 팔십 평생, 특히 기업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나를 도와주셨다. 그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도 '현대'도 없었을 것임을 생각하니 다만 감사할 뿐이다.
또한 나 자신의 일에 철두철미하다 보니 또 내 급한 성미 탓에, 내 주변 사람 그리고 더 멀리에 보이지 않는 많은 분들에게 알게 모르 게 마음의 상처를 입힌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널리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이 땅의 밝고 새로운 희망을 위하여, 젊은이들 그리고 시련에 빠진 오늘의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이러한 나의 살아온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이 땅에 태어나서 (정주영 회장) 글을 마치며,,, 1997. 세모



'현대자동차'와 '현대조선'

며칠 후 김부총리가 대통령과의 면담을 잡았다고 해서 청와대로 들어갔다. "그동안 여기저기 쫓아다녀봤지만 일본이나 미국이나 아예 상대를 안해 줍니다. 아직 초보적인 기술 단계에 있는 너희가 무슨 조선 이며 무슨 몇십만 톤이냐는 식이니,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저는 못 하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대통령이 화를 내면서 김총리에게 “앞으로는 정주영 회장이 어떤 사업을 한다고 해도 전부 다 거절 하시오. 정부가 상대도 하지 말란 말이오!" 했다. 그러고는 입을 꽉 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그 분위기에 할 말이 있다 쳐도 아무 말 못 했겠지만 더 할 말도 없고 해서 나도 그냥 입 다물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이 한참이나 흘렀다. 그러더니 이윽고 대통령이 담배를 하나 피워 물고 나에게도 한 대 권했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지만 그 상황에서 대통령이 권하는 담배를 어떻게 '저는 담배를 안 피웁니다' 할 수가 있나?
대통령이 불을 붙여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면서 한참 있는데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경제 총수 부총리가 적극 지원하겠다는데 그래, 그거 하나 못하겠다고 정회장이 여기서 체념하고 포기해요? 처음에 하겠다고 할 때는 이 일이 쉽다고 생각했어요? 어려운 거 알았을 거 아뇨? 그러면서도 나선거면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 하든 해내야지, 그저 한 번 해보고는 안 되니까 못하겠다, 그러는게 있을 수있소?" 할 말이 없었다. “이건 꼭 해야만 하오, 정회장! 일본, 미국으로 다녔다니 그럼 이번에는 구라파로 나가 찾아봐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이니까 빨리 구라파로 뛰어나가요." 대통령이 그렇게 나오는데 더 이상 못하겠다는 소리는 할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더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하고 나왔다.
청와대에서 나와서 나는 조선소 건설이 당장 나한테 주어진 피할 수도 늘쩡거릴 수도 없는 엄숙한 과제라는 생각을 했다. 오로지 나라의 경제 발전 외에 아무런 사심이 없었던 지도자 박대통령의 조선소 건설의 대한 의지와 집념이 나에게 가슴 뻐근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어코 만들어내야겠그나." 돈 꾸러 다니다 지처 무릅 힘이 빠져나갔던 나는 그날부터 새로운 각오와 결심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 땅에 때어나서 p165



'중동 진출의 드라마 그리고 1980년'

그러던 그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피격되는 참변이 일어났다.
충격이었다.
박대통령도 나처럼 농사꾼의 아들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나는 우리 후손들에게는 절대로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는 염원이 서로 같았고, 무슨 일이든 신념을 갖고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사고와 목적 의식이 뚜렷했던 것이 서로 같았고, 리고 소신을 갖고 결행하는 강력한 실천력이 또한 서로 같았다. 공통점이 많은 만큼 서로 인정하고 신뢰하면서 나라 발전에 대해서 같은 공감대로 함께 공유한 시간도 꽤 많았던, 사심이라고는 없었던 뛰어난 지도자였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것은 없었지만, '현대'의 성장 자체가 무엇보다 경제 발전에 역점을 두고 경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박대통령의 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은 너무나 망가뜨려져 침몰할 지경의 위기에 빠진 경제 상황이지만, 그래도 자동차 1천만대, 국민 소득 1만 달러의 오늘을 만들어놓은 업적은 누가 뭐라든 박대통령이 이룬 것이며, 이 사실에 대해서는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이 땅에 때어나서 p253



'서울올림픽 유치와 제5공화국'

나는 우리 '현대'에서 해외 경력이 있는 간부급 직원들을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정예 사무요원으로 파견했고, 한강 치수 정비사업과 한강변의 기적을 보여줄 여건을 조성케 했다. 올림픽 관련 정보처리시설 및 전시물도 기증했고, 88 공식 자동차 공급업체로서 경기 진행용 전 차량을 무상 공급해주었다. 대회 관계자와 해외 유력 인사들을 초청해 산업체 시찰 등으로 정성껏 접대도 했으며, 해외 현 지지점장들을 동원해서 전 세계 올림픽의 유력 인사와의 접촉과 참여도 유도했다. 당시의 정부를 위해서가아니었다.
내가 태어나 살고 일하고,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내 나라를 위해서였다.
정부가 사람이, 권력이, 마음에 들건 안들건 조국은 언제나 우리들의 것이며 우리 후손들의 것이다. 조국은 날마다 발전, 번영하면서 영원해야한다.
반드시 짚어둘 얘기가 있다.
88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나는 단 1원의 올림픽 관련 수익 사업도 하지 않았고, 단 1원의 올림픽 시설 공사도 하지 않았다.
이 땅에 때어나서 p291